
영화 역사상 이렇게 소름돋는 엔딩을 가진 히어로물이 있었던가? 그동안 최고의 엔딩으로 생각해왔던 엑스맨2를 능가하고 말았다. 다크나이트로 배트맨은 다크 히어로의 영역을 넘어 완전한 안티 히어로로 자리잡았다. 거리낌 없는 조커의 행동 앞에 배트맨을 제외한 어떤 인물도 정의란 미명 하에 자기를 합리화시키려는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맞고 만다. 결과적으로 조커는 승리한 셈이다. 피터 파커도 꽤 오랜기간 고생을 했다. 무수한 오해를 받으며, 일상생활과 히어로 생활을 병행하느라 자신을 희생하면서. 하지만 다크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은 결국 풀린 시민들의 오해도, 연인의 사랑도 남지 못 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거라고는 정의를 실천한다는 자기위안 뿐이다. 스파이더맨2가 나와 스파이더맨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 흔히 배트맨이 비교 대상으로 오르곤 했다. 부르주아의 돈지랄 취미생활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끝에 도망치는 배트맨의 뒷모습을 본다면, 이젠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못 할 것이다.(...사실 이건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의 영향도 있다.)
다크나이트는 결국 조커의 영화이다. 솔직히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은 이상적인 형태의 주인공이라 볼 순 없다. 슈트 디자인 자체도 극의 성격을 위해 디자인했다는 느낌이 온다. 역사상 이렇게 악랄한 가면을 쓴 배트맨이 있었던가?(목소리도 그렇다) 그는 끊임없이 시험받는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 잭 니콜슨의 만화적인 조커와는 전혀 다른, 진정 광기에 찬 새로운 조커를 탄생시킨 히스 레저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경의를 보낸다. 비긴즈에서는 좋기는 하지만 2% 모자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크나이트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투페이스를 후속편으로 넘기지 않고 다크나이트에서 끝내버린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쩌면 비긴즈는 다크나이트를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크나이트가 너무나 완벽한 형태의 결말을 지어버렸기 때문에, 솔직히 차기작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히스 레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데 안도감도 느낀다. 다소의 무례에 사과하며, 히스 레저의 명복을 빈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지만, 여전히 불만스러운 구석도 없진 않다. 비긴즈 때부터 나는 뉴욕이 되어버린 고담 시가 불만이라고 했었다. 이번에도 그건 여전하다. 홍콩과 중국, 국제외교 같은 단어가 배트맨에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그런 리얼리티가 다크나이트의 핵심 스토리를 이루는 근간이기도 함은 분명 사실이다. 모든 것이 모호한 현실성이야말로 놀란의 배트맨의 핵심이니까. 어쩌면 이제 슬슬 놀란의 고담 시를 인정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ps.미국인은 M1911A1으로 죽여야 한다. 아니면 S&W이거나.[...]
ps2.째진 입이란 설정은 1947년 LA에서 발생했던 엘리자베스 쇼트 토막살인사건(일명 블랙 달리아)에서 모티브를 받은 게 아닌가 싶군요. 쇼트는 입이 귀까지 찢어져 기괴한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죠. 조커 자체는 1940년에 탄생한 캐릭터이긴 합니다만...구글에서 Black Dahlia로 이미지 검색해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잔인한 이미지가 많으니 주의하시길.









덧글
vyse 2008/08/10 18:43 # 답글
진짜 저건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싫다 ㅠㅠ
계란소년 2008/08/10 18:46 #
휴가! 휴가! 외박! 외박!
Sepiroot 2008/08/10 18:47 # 답글
술마시고 턱으로 술이 흐르는게 귀여웠음(?)
계란소년 2008/08/10 18:51 #
캐리비안의 해적도 아니고...
제너럴 2008/08/10 19:32 # 답글
P.S.2에 나오는 블랙 달리아 말입니다만, 영화는 엄청 재미 없더군요.아무튼 저도 다크나이트 보고 왔습니다.
히스레저 연기 쩔더군요. 다크나이트에서 유일하게 안타까운건 역시 히스레저의 그 소름끼치는 연기를 두번다시 볼수 없다는 점이지만....
나르사스 2008/08/10 20:11 # 답글
제 최고의 엔딩은 스파이더맨2였습니다.사람들의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었죠...
놀란 감독이 오래전에 투페이스와 조커의 대결이 3편에서 펼쳐진다고 해서 살아날 줄 알았는데 결과가 바뀐 모양입니다...
잠본이 2008/08/10 21:01 # 답글
입에 대한 상해문제는 이승복 어린이(라는 건 농담이고)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흑백영화시절 작품이 원작판 조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데 혹시나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별상관없지만 놀란판 고담시는 뉴욕과는 살짝 다르다 싶어서 알아봤더니 시카고를 중심으로 찍었다더군요 (역시 갱들의 도시 시카고~) OTL
로오나 2008/08/10 22:51 # 답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현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기존에 사용되었던 많은 장치들을 내쫓아버렸죠. 결과적으로 '그래서' 다크나이트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고.
魔神皇帝 2008/08/10 23:11 # 답글
정말 히스 레저는 조커로 영원히 기억될듯 합니다.덕분에 다른 모든 역할들의 그림자가 희미해져버렸지요 :-)
Spearhead 2008/08/11 01:31 # 답글
배트맨 비긴즈를 시작으로 굉장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더니후속편에서 이정도까지 해줄 줄은 정말 몰랐었는데...최고입니다. 정말로.
조커는 살아남았지만 후속작에서 조커를 쓴다는 건 도박에 가까운 행위일 겁니다.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히스 레저가 안타까울 수 밖에 없네요.
트랙백 감사합니다:)